주식 시장에는 '지루한 것이 좋다(Boring is Good)'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화려한 테마주들이 밤하늘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라질 때, 묵묵히 현금을 창출하며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쌓아가는 기업들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전력 설비 정비의 중추를 담당하는 한전KPS는 그동안 대표적인 '지루한 주식'이었습니다. 안정적이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든, 전형적인 유틸리티 방어주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전KPS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단순히 전기를 고치는 회사를 넘어, 차세대 에너지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재평가받고 있는 이 종목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먼저 시장의 심리를 대변하는 기술적 지표들을 살펴보면, 현재 투자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습니다. 한전KPS의 14일 상대강도지수(RSI)는 65.96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RSI가 30 이하면 과매도, 70 이상이면 과매수 구간으로 해석하는데, 현재 수치는 과매수 구간인 70을 향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강한 매수 우위'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주가가 단순히 오르는 것을 넘어, 상승 탄력이 붙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더해 AI 분석 점수가 82점이라는 고득점을 기록하고, 최근 변동률이 6.35%에 달한다는 점은 무겁기로 소문난 이 주식에 강력한 수급이 유입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시장은 지금 한전KPS의 '변화'에 베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장의 시선을 이토록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요? 가장 강력한 촉매제는 단연 지난 2026년 2월 12일 국회를 통과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이 법안의 통과는 단순한 정책적 지원을 넘어, 한전KPS의 미래 먹거리가 법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SMR은 대형 원전 대비 건설 기간이 짧고 안전성이 높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에너지원입니다. 중요한 점은 SMR 역시 가동을 시작하면 30년에서 40년 동안 지속적인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한전기술이 주도하는 i-SMR이 2030년대 상업 운전을 시작하게 되면, 한전KPS는 그 수명 주기 내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는 기업 가치 평가(Valuation) 시 적용되는 멀티플을 상향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가 됩니다.
물론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아냈던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4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2.9% 감소한 193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련한 투자자라면 이 숫자의 이면을 봐야 합니다. 이번 실적 감소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전 정비 스케줄에 따른 일시적인 매출 공백과 재료비 증가라는 일회성 요인에 기인합니다. 오히려 시장 전문가들은 이 '일시적 부진'을 매수의 기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KB증권이 목표주가를 6만 9,000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입니다. 지나간 4분기가 아닌, 다가올 2026년의 실적 턴어라운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6년 한전KPS가 마주할 사업 환경은 '역대급'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해 예정된 정비 물량은 화력발전 101기, 원자력발전 20기라는 압도적인 규모입니다. 특히 고리 2호기의 재가동과 세울 3, 4호 신규 원전의 가동 시작은 한전KPS의 일감이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구간에 진입했음을 알립니다. 정비 회사의 매출은 결국 '얼마나 많은 발전소가 돌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탈원전 정책 폐기 이후 정상화 과정을 거쳐, 이제는 실질적인 물량 증대 효과가 재무제표에 찍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2024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의 모멘텀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체코 원전 본계약과 관련된 기대감, 그리고 미국 시장에서의 APR1400 역제안설 등은 한전KPS의 무대를 글로벌로 확장시킵니다. 국내 발전소 정비 시장이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한다면, 해외 원전 수주와 정비 계약은 주가 상승의 '알파(초과 수익)'를 만들어낼 기폭제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 센터 확충 등으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기저 전력인 원자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어 한전KPS의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높은 프리미엄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리스크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 규제 강화에 따른 고정비 증가 추이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변수입니다. 인건비와 안전 관리 비용의 상승은 영업이익률을 훼손할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너지 정책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SMR 특별법 통과라는 거대한 정책적 순풍이 불고 있고,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 속에서 원전 생태계 복원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전KPS는 현재 '환골탈태'의 과정에 있습니다. 과거의 한전KPS가 전력 수급의 안정을 돕는 조연이었다면, 지금은 SMR과 원전 수출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분석이 가리키는 상승 추세와 펀더멘털의 구조적 개선이 맞물리는 지금, 한전KPS는 단순한 방어주 투자를 넘어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단기적인 실적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다, 2026년부터 펼쳐질 정비 물량의 구조적 확대와 SMR이라는 미래 성장 동력에 집중하는 긴 호흡의 투자가 유효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