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주소창에 '.com'을 입력할 때마다 누군가의 금고에 꼬박꼬박 통행료가 쌓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현실 세계에 목이 좋은 부동산이 있다면, 디지털 세계에는 흔들림 없는 '디지털 톨게이트'가 존재합니다. 바로 전 세계 인터넷 도메인의 핵심인 '.com'과 '.net'의 독점 레지스트리 운영사인 베리사인(VeriSign, 심볼: VRSN)입니다. 화려한 혁신 기술을 매일 쏟아내는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베리사인은 다소 조용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현금 창출력과 최근 불어오는 AI 열풍 속 새로운 성장 동력을 들여다보면, 이 기업이 왜 오랜 시간 월가의 스마트 머니(Smart Money)로부터 사랑받아왔는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 베리사인의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묵직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주가의 단기적인 과열이나 침체를 나타내는 기술적 지표인 14일 기준 RSI(상대강도지수)는 현재 69.39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RSI가 70에 도달하면 시장에서 주식이 단기적으로 과매수(Overbought) 상태에 진입했다고 해석합니다. 즉, 최근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강하게 유입되며 주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4.38%의 긍정적인 변동률을 보여준 것과 맞물려, 전반적인 기술적 분석 점수 역시 67점으로 양호한 펀더멘털과 시장의 관심이 결합된 견조한 상승 추세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52주 최고가인 310.60달러에서 다소 내려온 240달러대(3월 25일 개장가 기준 241.14달러)에 머물고 있는 현재 주가는, 오히려 밸류에이션 부담을 덜어낸 매력적인 진입 구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반등의 이면에는 베리사인의 변함없이 강력한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4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베리사인의 비즈니스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당순이익(EPS)은 2.23달러로 시장 컨센서스였던 2.29달러를 아주 소폭 하회했지만, 이는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한 4억 2,530만 달러의 매출과, 입이 떡 벌어지는 49.84%의 순이익률입니다. 100원을 벌면 50원이 순수하게 남는다는 뜻으로, 이는 어지간한 글로벌 우량 기업들도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경이로운 수익성입니다. 인프라 구축이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도메인 유지보수와 갱신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독점적 비즈니스 모델의 위력이 숫자로 증명된 셈입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핵심 자산인 '.com' 도메인 베이스가 작년 12월 말 기준 1억 6,100만 개로 전년 대비 3%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 웹사이트 성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결과입니다. 월가의 투자은행 씨티그룹(Citigroup)은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비록 목표 주가를 337달러에서 280달러로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매수(Buy)의견을 강력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씨티그룹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AI 산업이 도메인 성장의 새로운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수많은 AI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웹을 통해 런칭되면서, 가장 신뢰도 높은 '.com' 도메인에 대한 수요가 다시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JP모건 역시 도메인 증가 추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목표가를 271달러로 소폭 상향 조정했습니다.
물론 투자자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리스크와 시장의 경계 신호도 존재합니다. 최근 기관투자자인 Assenagon Asset Management가 4분기에 지분을 24.1% 축소했으며, 지난 3개월 동안 CEO를 포함한 내부 임원들이 약 234만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도했다는 점은 단기적인 투자 심리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내부자 매도가 항상 기업의 악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개인적인 세금 문제나 포트폴리오 다각화 목적일 수 있음), 주가의 단기적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애널리스트들의 종합 평가가 '매수' 2개, '보유(Hold)' 3개로 중립(Hold)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폭발적인 주가 상승보다는 안정적인 횡보 흐름을 점치는 시장의 시각을 대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리사인이 주주들을 대하는 태도는 장기 투자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줍니다. 베리사인은 최근 분기 배당금을 기존 0.77달러에서 0.81달러로 인상했습니다. 현재 배당 수익률은 1.3% 수준으로 고배당주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36.78%에 불과한 낮은 배당 성향입니다. 이는 회사가 벌어들인 돈의 3분의 1 정도만 배당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뜻으로, 향후 경제 위기가 오더라도 배당금을 삭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늘려갈 수 있는 막강한 여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92.90%에 달하는 높은 기관투자자 보유율은 이 주식이 단기 테마에 휩쓸리는 가벼운 주식이 아니라, 거대 자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의 중심을 잡아주는 '안전판'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베리사인(VRSN)은 하루아침에 주가가 두 배, 세 배 급등하는 짜릿한 성장주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고속도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을 쥐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톨게이트입니다. 50%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마진, AI 시대에 발맞춰 다시 꿈틀거리는 도메인 수요, 그리고 주주 친화적인 배당 인상 정책은 변동성이 극심한 현재의 매크로 경제 환경에서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추고 꾸준한 우상향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가인 292달러는 현재 주가 대비 약 20% 이상의 상승 여력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기술주들의 롤러코스터 장세에 지쳤다면, 독점적 해자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조용히 현금을 긁어모으는 베리사인의 묵직한 발걸음에 펀드 한 켠을 내어주는 것도 훌륭한 투자 전략이 될 것입니다.